중앙은행은 현대판 연금술사로 불린다. 과거에는 금이 아닌 것을 금으로 만드는 기술이 연금술로 불렸다면, 오늘날 중앙은행은 국민에게 위임받은 발권력으로 돈을 찍어내는 연금술을 부린다. 기획재정부로부터 독립된 기관이기 때문에 금융통화위원회 위원들의 동의만 있으면 돈을 찍어내 국민에게 뿌릴 수도 있다. 동시에 현대의 중앙은행은 물가가 안정되도록 통화정책을 펼치며, 부동산이나 주식으로 돈이 너무 쏠리는 등 위기를 감시하는 금융안정 책무도 지고 있다. 찍어내 쓰기만 하면 될 것 같은 `화폐 연금술`이라는 권력을 갖고도 이 같은 행위를 가장 두려워하는 곳이 한은인 이유다. 또 4000억달러에 이르는 외환보유액을 관리하는 주체로, 전 세계 시장에서 원화 가치를 방어하는 선봉에 서 있는 곳도 한은이다.
한은은 대한제국이 1903년 설립한 대한중앙은행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1910년 경술국치 때 한일합병이 이뤄지면서 이내 역할을 상실했다. 1945년 광복 이후, 1950년 5월 제헌의회가 한은법을 제정함에 따라 그해 6월 12일 대한민국 중앙은행인 한은이 업무를 시작해 오늘날까지 70년을 이어오게 됐다.
한은은 출범 직후부터 고난을 겪었다. 출범한 지 보름도 지나지 않아 북한의 남침으로 인해 6·25전쟁이 발발하며 서울 본부에서 업무를 계속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전쟁의 상흔이 깊어 한국이 전 세계 최빈국에 머무르던 시절, 한은은 산업금융을 위한 창구 역할을 했다. 당시에는 현대적 의미의 물가 조절이나 유동성 공급 역할보다는 정부가 수출 대책을 발표하면 이를 위한 기업 여신을 잘 챙기는 것이 주된 업무였다. 이로 인해 한은은 `재무부 남대문 출장소` 같은 오명으로 불리곤 했다. 각종 통화정책을 담당하는 금융통화위원은 각종 정부 관료가 겸직했고, 금융통화위원회 의장도 정부 관료가 도맡았다.
한은 역할이 본격적으로 조명받은 것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고조되던 당시였다. 기업들은 은행에서 빌린 돈을 무분별하게 투자했고, 이로 인해 대우 같은 거대 기업에서 줄줄이 부실이 터져나오며 기업과 은행, 그리고 이들을 감시해야 할 정부에 비판이 빗발쳤다. 이에 한은은 금융감독 기능을 분리해 별도 기관(금융감독원)을 설립하는 대신 정부로부터의 독립성을 얻어냈다. 각종 통화정책을 주관하는 금융통화위원회 의장을 한은 총재가 수행하도록 바뀌었으며, 위원회에 참석하는 금통위원도 상임직으로 바뀌었다.
이후 한국은행은 1998년 IMF 위기나 2008년 미국에서 발발한 글로벌 금융위기 등 한국 경제가 휘청일 때마다 위기 극복을 위한 주요 기관으로 호명됐다. 이 과정에서 한은은 금융안정 목표를 추가하고 위기 때 긴급여신 발동 조건을 완화하는 등 역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안동현 서울대 교수는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적극적 통화정책을 실시할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과거 한은에서 조사국장을 지낸 장민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이번 위기를 계기로 한은의 대출, 정부보증, 양적완화를 위한 규정 전반을 정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송민근 기자 / 김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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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12, 2020 at 02:01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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